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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를 보고 전투영화(영화관련)

조커

스포일러 있으니 띄웁니다.

(술 먹고 쓴 글이라 글이 전부 날 것 그대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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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커는 일단 넘어야 할 벽이 두개 있었다.

하나는 저 위대한 작품인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 이미지. 하는 말 마다 근거없는 거짓말에 돈도 명예도 필요로 하지 않는 혼란 그 자체. 정돈된 질서에 대한 자연체 그 자체 그 정점에 있는 그 캐릭터.

하나는 귀재 팀 버튼이, 그가 세상을 보는 독창적인 프리즘 안에 투영된 비틀린 이미지들로 탄생한 배트맨에서 등장한 악역 조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차이나 타운] 등등 이루 셀 수없는 걸작에서 주연을 맡은 대배우 잭 니콜슨이 창조한 조커. 팀 버튼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만화적인 세트, 의상 안에서 가벼워지기 쉬운 이 작품에 말 할 수 없는 깊이감을 안겨준 광인 캐릭터.

히스 레저도 넘어야 할 벽이 잭 니콜슨의 조커 하나였는데, 호아킨 피닉스는 두개나 되었다.

그런데 그는 무참하게 말라버린 몸과 세상의 온갖 비정함과 무관심에 찌들은 얼굴을 가지고 이 둘을 넘어선다.

(2)

영화관에서 세번 울었다.

첫번째는 아서가 우연히 얻은 궁극적인 폭력장치 -권총으로 전철에서 세명을 죽이고 도망쳐 춤을 출 때. 극도로 아름다운 이 장면은, 사람을 전율하게 함과 동시에 그가 그를 억누르던 극한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다룬다. 그것은 공포나 불안이 아닌, 처음으로 그가 누리는 자유, 살의를 방출함으로 느끼는 쾌감을 표현하는 춤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죽이지 말라는 대죄를 어겼는데 세상에서 존재함으로 아무런 관심도 받아보지 못한 그는 이게 해방과 기쁨이라는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어울어진 춤사위다.

두번째는 그가 냉장고의 모든 걸 끄집어내고 그 안에 들어가 버리는 순간. 부서질 거 같은 몸과 마음을 지켜줄 게 아무것도 없다. 세상이, 삶이, 사회의 시스템이, 심지어 혈육(이라고 믿는 존재)조차 자기를 아무도 지켜주지도 따듯한 말 한마디 조차 해주지 않는다. 거기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치고 단단한 어딘가로 들어가 웅크리는 것 뿐. 그게 눈물을 자아낸다.

세번째는 그가 자살에 실패하고, 작중 코미디 쇼 진행자인 로버트 드니로를 죽이고 체포되어 호송되다가 교통사고로 죽을 뻔 한 뒤, 폭도들에게 둘러쌓여 비참하고 버림받았으며 사회 하층이 가치없는 쓰레기 취급받던 그가, 조커로 다시 태어나 군림하는 순간이다. 죽었다가 부활하는. 마치 예수와 같이. 그는 시스템에서 어쩔 수 없다 취급받지만 그런 취급을 왜 당해야 하는지 납득 할 수 업는 분노한 다수들에게 추앙받는 심볼로 거듭난다. 새로운 탄생. 무엇 하나 자기 의지로 살 수 없던 억압받던 존재가 폭력이라는 도구로 해방되어 거듭나는 이 광경. 어찌보면 지독하게 위험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워 전율하고 울 수 밖에 없는 그런 씬이었다.

(3)

작년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만비키 카조쿠-어떤 가족]은 서양인들 시선에서는 신비롭고 자본주의의 광영에 찬 일본이라는 피상적 나라였던 일본에,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소외된 자들이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걸 보여주고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올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또 팔므두르의 영광을 안았다. 기생충은 아다시피 한 건축물 안의 단계를 통해서 한국 안의 계급사회에 대해서 비틀고 꼬집는 영화다.

내 눈에는 조커의 황금사자상 수상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세상은 점점 블록경제로, 새로운 민족주의가 득세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 안에서 이전까지는 가면으로나마 쓰자고 했던 인본주의나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애써 버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일 정도다.

조커는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한가지 메세지를 주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런 존재지만,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고 있어. 아파. 괴로워... 그러니까 잔인하게 대하지마. 무시하지 마. 아니 비웃지마. ....

그러지마.

제발.

... 우리도 사람이라 분노할 줄 알아.

화가 나.

우리가 언젠가 힘이 생기면...

그때는.

총을 겨눌거야.

상처를 주고

아프게 만들고

비웃은

너희들에게.

그리고

당길거야

그 방아쇠를.

주저없이.

그리고

웃어줄거야.

눈물이 날 정도로 말이지.


덧글

  • Barde 2019/10/09 02:34 # 답글

    울 정도로 인상깊게 보셨군요.
  • 함부르거 2019/10/10 00:02 # 답글

    저랑 감상이 비슷하시네요. 저는 뇌 속의 경고장치가 작동해서인지 지하철 살인 장면에서 브레이크가 걸리더라구요.

    웃지 마. 공감하지 마. 쾌감을 느끼지 마. 이건 그냥 한계점에 달한 인간이 광기에 빠져드는 장면일 뿐이야. 연속으로 브레이크를 걸고서야 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글을 쓰겠지만 이 영화는 한계점에 달한 세계에 현재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일에 대한 표상 같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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