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위젯 (화이트)

1039
292
945440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667

통계 위젯 (블랙)

1039
292
945440


만화가가 꿈이었다

어린시절에는 만화가가 꿈이었다.


그래서 자료들도 끌어모으고, 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아버지는 나에게 육군사관학교 갈 수 있지 않을까 등의 꿈이 있었고 나 같이 제도권 교육 열등생이자 운동을 싫어하는 애에게 그건 무리였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만화 그림을 따라 그려보고 이래저래 노력을 했다.

하지만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건 희미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작가분들의 이전 그림과 지금 그림을 보면 그림이 이렇게 늘수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애초부터 이 사람들과 나에게는 재능이라는 큰 간극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있었다. 

당장 사람을 두사람만 세워둬도 위치관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되었으니까. 

어느 책에서 그림이 입체라는 것에 대해서 말했고, 그래서 머리는 깨닫고 있었지만, 이 열등생에게는 도무지 그게 손에서 표현이 안되었다. 배운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고.

이런 희미하게 느껴지던 불안에 종지부를 찍던건, 당시 서클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산재하던 동인지를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이런 서클들은 만화가가 되기전에 만화마감 감각이나 이런걸 익혀보자는 취지로 많이 결성되고 그랬고, 일러스트 전시전 등을 열고 회지를 팔고 그랬다. 


이런 서클들을 아마추어 동인들이라고 그랬고, 부산의 태극, 서울의 해오름 등이 아주 유명했다. 대구에는 053이라는 연합서클이 또 유명했고...

이 동인들 서클지 들을 보면서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멀어지고 또 그랬다. 부산 태극에는 박성우 님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이 존재했고, 대구에는 한수환 님이나, 강재신 님 같은 대가들이 활동했다. 당장 같은 서클 안에는 댓생 귀재인 송동근 형님이 활동했고, 같은 나이 또래인 이기호나 개그 천재인 류병민 같은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프로의 작가들 그림이나 만화를 보는것과 옆에 인간으로 말을 나누고 실존하는 사람이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뛰어난 실적을 남기는 걸 보면서 뭔가를 하는건 천양지차다.

참 큰 고민이었다. 삶 같은게 의미가 있을까 싶던 그런 매일매일 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발로 그린 것 같은 그림을 보면서 왜 안되나 매일 고민했다. 아마 지금 젊었을 때 이 쪼다같은 돼지녀석을 보면 그림을 더 많이 그릴 생각이나 하라고 고함을 질렀을 텐데. 이 돼지 녀석은 그냥 밤에 집 베란다에서 바보같이 울기만 했다. 밤새도록.

그런데 어느날 동인지에 에어리어 88에 대한 짧은 평론글 같은 걸 실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주변 평판이 좋았었다. 


다른 동인에서 글 써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을 정도니까.

그때... 그럼 이길로 한번 가볼까? 하고 스토리 작가라는 길을 걷기로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2년 뒤에는 데뷔를 할 수 있었다. 그 첫 원고료로 부모님 속옷을 사고,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있었다.


후회는 전혀 하지 않는다.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많은 기회를 얻었으니까.


점심먹고 잠시 회한에 잠겨서.. 추억에 빠져 보았다. 


덧글

  • 2018/03/12 21: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금린어 2018/03/12 23:16 # 답글

    뭔가 보면서 기시감을 많이 느꼈네요 ㅎㅎ 저도 어렸을 때 만화가가 꿈이었지만 재능의 벽을 실감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육군사관학교에 갔었습니다. 결국 지금은 시나리오 작업을 메인으로 하는 컨텐츠 기획자를 하고 있군요. 옛날 생각이 많이 나서 리플을 달게 되었습니다. 저도 다양한 시도와 좌절, 경험들이 현재의 저를 있게 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좋은 글 많이 눈팅했었는데, 앞으로도 하시는 일 잘 되셨으면 좋겠네요.
  • 타누키 2018/03/13 00:50 # 답글

    멋지네요~
  • Barroco 2018/03/13 10:28 # 답글

    저와 비슷한 경험의 이야기를 하셔서 너무나도 공감이 갑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저도 warmania님의 앞으로의 모든 행보와 활동을 응원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