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로에 수양록

운이 정말 좋아서 30대 초반에 인생에 기준이 되어줄 숱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느낌이다. 

말 한마디에 배울 것이 숱하게 묻어나오는 사람들 이었고, 이쯤하면 됐지 하고 생각할 때 그 사람들이 마음속의 어떤 가치 판단 기준이 되어 주었다. 그게 더 노력을 하게 해주었다. 그분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하지만 40 줄에 들어서면서 30대 그 경험들이 얼마나 은혜로운 것이었는지 날마다 발견한다. 주변과 곁에 배울 것 없는자만 있고 그사람 핑계를 대고 싶어지는 일만 있다면 얼마나 비참한 건지 잘 알고 있다. 그럴때 답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어느 작가분이 나에 대해 덕담을 해주실때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과감한 결정을 내릴수 있는 것이라고 했으니까. 

17년 전 이국 땅에 맨주먹 하나로 왔다. 그리고 벌어보고 먹고 자고 보고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범죄자도 선량한 사람들도 만났다. 배워보고 싶은 학문을 내 손으로 돈을 벌어서 배웠다. 학문의 천재, 예술의 천재도 만날수 있었다. 정말 넓은 세상을 보았다. 빛이 닿는 환한 곳도 인간의 어두운 욕구가 배설되는 어두운 곳도 보았다. 아름다운 사람과도 만나 

아이가 둘이 태어나고 걷고 말하는 것을 보았고, 내 이름으로 집이 올라가는 것도 보았다. 


뭐가 두려울까 싶다.

세상에는 50억 사람이 있다고 한다. 더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겠지.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날수 있겠지. 

그러면 지금보다 더 감사하고 기쁠수 있겠지. 




만화 문법의 고도화라는 문제와 직면한 일본 만화 문서고(일본통신)

일본 만화가 봉착한 어려운 지점 중 하나가 문법의 고도화다. 

최근의 일본의 만화는 작품의 리얼리티를 위해서 많은 양의 정보를 담아야 하고, 한정된 지면 안에 어떻게 고도의 정보를 응축시키는가가 중요한 승부처였었다. 하지만, 되려 이것이 직관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려는 저연령층의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매체가 되어 버린다.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만화를 소비하고 재밌게 읽어내는 읽을거리를 원하는데 작품 자체의 만듦새는 어느새 편집자와 작가의 눈높이에서 재단된 어렵고도 어려운 매체가 되어 버린다.

이전의 소니 비디오 데크가 그랬다고 예를 들어볼까... 비디오 데크의 기능은 사실 영상을 디스플레이에 투영하는게 기본인데 여기에 수십개 기능을 붙인 고성능 기능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중에 제대로 쓴 기능은 과연 몇개일까? 물론 고도의 리터러시를 갖춘 사람들은 이런 고수를 꽤뚫어본다. 하지만, 수많은 라이트 유저의 양산을 소홀하게 하는 결과를 낳은건 아닐까. 진화론도 그러하다. 너무 고도로 진화한 개체는 그 자체로 쇠퇴가 찾아온다. 

물론 일본 만화는 망하거나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의 그 막강한 지위를 고수하는데는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일본 코미코의 만화들은 만화를 그다지 읽지 않았던 어린 라이트 유저에게 크게 인기를 얻는다. 

결코 고도의 문법으로 승부하지도 고도의 심화된 작화로 승부를 건 것이 아니다. 

중요한건 과연 무엇일까.


여성 독자를 자나깨나 생각을 해야 하는 편집업계... 만화관련

요즘 일본은 여성독자가 아니면 만화 편집팀 유지가 아예 어려운 국면입니다.

물론 돈을 쓰는 사람들의 비중은 남자도 만만치 않지만, 그들도 기존의 남성들이 즐긴 에너지와 아드레날린 만땅 만화를 즐기진 않는다는 느낌? 

그럼 이전의 그 거대한 소비층은 어딜갔나? 라는 대답엔 다들 스마트 폰 게임을 논하고들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팔리는 만화는 나온다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래도 1980년대의 거대한 만화가 만들어놓은 그 이미지에는 한창 못미치죠. 

여하튼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조류 같습니다. 

남자 만화만 생각하고 산 열혈 인간들에게는 여러모로 잔인한 계절이네요...

대가들의 삶. 성장하는 자 멈추는 자 만화관련

운이 좋았던 것은 일본에 와서 대가들을 만난 것 자체가 아니다. 
황홀하게만 바라봤던 세계의 이면에 얼마나 치열한 경쟁과 냉혹함이 도사리고 있는가를 피부로 느껴본 것이다.

50대를 훌쩍 넘기고 회사에서도 내노라하는 초대형작품을 수십개 만든 편집장이 밤 11시에도 데스크에 앉아서 일일이 들어온 작품들의 인쇄지를 검토하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부하가 저지른 실수를 대신해, 작가를 찾아가 회사에서 수백명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도 자신이 무릎꿇고 사과하고 그 작가의 연재를 계속하게 만드는 이야기에는 숙연해진다. 
일본에서 전설적인 작품을 만들었지만, 더 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년동안 정해진 요일, 매일 그시간에 찾아가 작가분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기만 했다는 편집장의 이야기도 있다.

한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치열한 장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소화하는 사람들의 타입에는 여러부류가 있다. 
이걸 그냥 미담이나 낭만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현장에서는 이렇게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잠시 즐기는 여흥을 그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동경하는 사람. 그들이 치열한 삶을 살고 받는 대가만 보고 그것만 생각하는 사람. 그들이 그런 현장에서 살기 위해 포기한 갖가지 것들을 보지 않고 누리는 삶의 윤택한 일면만 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보고 그걸 따라하려는 따라쟁이. 그런 사람들이 수많은 희비극을 엮어낸다.

정말 극소수의 일부만이 이런 이야기의 숨은 일면을 알아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성장을 한다.


상영회의 추억 만화관련

상영회의 추억

아침에 건담 이야기를 페북에서 하다가 문득 기억이 나서 써본다. 
솔직히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아예 없던 20년 도 전 옛날이니 가능했다는 이야기를 전제로 말씀드린다. 요즘은 저작권 법 위반으로 쇠고랑 차거나 벌금이다.

20년 전에, 대학생이었다. 90학번 세대인 우리네 세대는 신세대 혹은 엑스세대라고 불렸다. 1980년대에 초등학생 시절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컬러 텔레비전의 수혜를 어린시절부터 정수했고, 만악의 근원이던 소련이 망하는 걸 눈으로 보면서 컸다. 세상은 경제가 발전해서 먹고 살만하고 아버지 세대나 어머니가 말하는 빈곤이나 보리고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당연히 이전 형들보다는 용돈이나 세뱃돈을 두둑히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우리였다. 물론, 아버지 세대는 경제호황으로 이런저런 오락거리를 찾아헤매었고 꿈에서나 상상하던 마이카 붐이 일어서 너도나도 자동차를 사고 집에는 컬러 텔레비전- 전자렌지 –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이 들어와서 어머니들이 조금이나마 가혹한 가사노동에서 해방이 되던 시기였다.

이때 아이들이 열광한 오락거리 중 하나가 바로 애니메이션이었다. 어릴때 컬러 텔레비전에서 오후 5시 반만 되면 쏟아져 나오던 [우주소년 아톰] [요술공주 밍키] [요술공주 새롬이] 같은 작품들은 다음날 학교에서 아이들의 화제를 마냥 독점했다. 일요일 아침에 방영되던 [미래소년 코난]이나 [은하철도 999]는 어린 마음에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진한 감동과 몰입감을 선사해주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성장을 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구성원이 되라고 하는 뜻모를 이야기에 등 떠밀려서 중학교/고등학교라는 입시지옥으로 줄을 지어 들어갔다. 윤택해졌지만 군사정권의 폭력이 지배하던 그 시절에 세상은 살벌했고 선생님들도 아이들에게 이해보다는 그저 받아들이기를 바랬다. 저항하면 폭력이 돌아왔다. 아이들은 이런 영문 모를 경쟁에서 자신들이 가진 에너지를 풀어낼 해방구를 간절히 원했다. 그중 하나가 어린시절부터 초등학교가 끝나면 꿈나라 세계를 선사해주던 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제 몸이 커지고 어른스러워지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거기서 원했다. 아이들은 서울의 고속버스 터미널과 용산의 음습한 뒷골목과 부산의 중고서점 골목을 거닐면서 그 무언가를 찾아냈다.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경제적인 번영은 오로지 영화관과 텔레비전으로 접할 수 있던 [영상]이라는 미디어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주었다. 바로 비디오 데크의 등장이었다. 아버지 세대가 이런저런 이유로 어머니와 싸워가며 집에 들여놨던 비디오 데크에 아이들은 영문모를 아저씨들이 담배에 쩔은 냄새를 풍기며 내밀던 16밀리 비디오 테잎을 아버지 몰래 집어넣고 보기 시작했다. 거기서 아이들은 별천지와 만났다.

어린 시절 보았던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뿜어져 나왔다. 작품 아키라는 살벌한 검열에 이리저리 잘려진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폭력과 파괴를 보여줬다. 동시에 대체 사람의 손으로 어떻게 그렸을까 의심스런 그림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어떻게 저런걸 상상했을까 싶은 상상력들을 보여줬다. 미국 방송으로 접했던 마크로스를 접하고는 미친 듯이 그 노래들을 테잎에 녹음했다. 성장하던 아이들은 유치했던 어린 시절의 변신로봇들과는 차원이 다른 발키리 전투머신에 열광하고 막 성에 눈뜨던 시절 린 민메이와 미사 중 누구 더 미인인가로 경쟁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 막 세상의 잔인함과 어른들 세상에 조금씩 눈떠 가던 감수성 애민한 아이들은 자신을 버려 세상을 구하는 나우시카의 희생에 눈물 짓기도 했다. 여자아이들 이나 남자아이들이나 공적들이 모는 비행선에 타고 구름 저편의 라퓨타라는 곳의 황홀경에 감탄하기도, 무스카라는 악당의 비열함에 분노하기도 했다.

비디오로 접한 차원이 다른 높은 수준의 내용과 그림, 주제가, 연출로 무장한 애니메이션이 다가 아니었다. 어른들의 장삿속이었지만, 경쟁적으로 들어온 일본 만화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활약을 만화책으로 접했다. 영문모를 일본어지만 학교 문방구 앞에 잔뜩 쌓인 뉴타입과 같은 정보지의 그림들을 보고 열심히 따라그리기도 했다.

당연히 아이들 중 읿주는 만화가가 그리고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다. 
다들 그래서 클럽이나 서클이라는 이름의 동인을 결성했다. 만화가나 애니메이션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싶은 아이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책을 찍어보고 만화가 생활을 미리 경험해보자는 취지였다. 
이 클럽이나 서클은 자주 상영회 라는 행사를 열었다. 당시에 한국의 대우가 내놓은 X2라는 컴퓨터는 영상물에 자막을 넣을 수 있었다. 이 기능을 이용해서 어렵사리 구한 일본어 혹은 영어 대본을 번역해서 자막을 손수 다 넣었다. 그리고 작은 극장들이나 카페를 빌려서 아직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하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에게 그걸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신자를 늘리려는 종교포교자 같은 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나도 대구의 한 동아리 소속이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와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과 같은 애니메이션들에 자막을 넣고, 돈을 모아서 포스터를 만들어서 큰 백화점 극장을 빌려서 상영회라는 행사를 가졌다. 과연 사람들이 올까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첫날 부터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극장 안에 미처 사람들이 다 들어가지 못해서 의자를 들어내고 땅바닥에 앉아서 봐야했는데도 사람들이 돌아가지 않고 홀린듯이 상영되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봤더랬다.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열기가 식지않아 땀을 비오듯이 흘려도 그래도 다들 서서 앉아서 스크린의 영상을 응시하고 있더랬다.

내가 만든 작품들도 아니고 만화업계에 애니업계에 난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관객들 한켠에 숨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새롭다. 상영회가 끝나고 한 중학생일까 고등학생 같은 아이가 물었다. “이거 또 언제해요? 꼭 또 올게요” 얼마전 나였던 그 아이의 눈망울이 아직도 기억에 또 새롭다. 
이런 것들이 아마 그 힘든 고통스런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창작일선으로 가게 하는 것이겠지. 그때 처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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